[정보통신신문=박남수기자]
공공부문에 혁신기술을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도록 국가계약제도를 개편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연구개발(R&D)과 구매를 연계하고, 기술적 해법을 사전에 확정하기 어려운 사업에는 성과목표 중심의 계약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보통신공사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네트워크 기술과 정보통신설비의 실증·도입 과정에서 공공조달 제도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관악을·재정경제기획위원회)은 지난달 3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첨단기술의 발전 주기가 짧아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정형화된 계약제도만으로는 시장에 없는 혁신기술을 적기에 도입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됐다. 발주 단계에서 규격과 세부 내용을 미리 확정해야 하는 기존 방식과 연구개발·구매가 분리된 구조가 혁신기술의 공공시장 진입을 제약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개발·구매 연계계약, 성과목표형 경쟁적 대화에 의한 계약, 시범특례에 의한 계약 등 3개 계약방식을 신설하도록 했다.
■R&D부터 구매까지 연계…성과물 조달 기반 마련
개발·구매 연계계약은 국가전략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 핵심전략기술 등을 연구개발하는 단계부터 성과물의 구매 조건을 미리 약정하는 방식이다.
연구개발기관은 공모를 통해 선정하고, 공모 단계에서 성과물의 구매 가능성과 조건·규모·기간, 구매금액 상한 또는 구매하지 않을 수 있는 사유를 함께 공고하도록 했다. 계약 체결 전 조달정책심의위원회 심의도 거쳐야 한다.
연구개발 성과물이 최종평가에서 우수한 성과로 인정되고 사전에 약정한 구매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확인되면 별도의 입찰 절차 없이 구매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연구개발 성과가 실제 공공조달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적 경로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기술개발 이후 별도의 구매 절차와 수요처 확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줄여 혁신기술의 초기 시장 형성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신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공공부문을 통해 초기 수요를 확보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실제 적용 대상과 구매 조건 등은 법안 통과 이후 하위법령과 구체적인 사업 설계에 따라 정해질 전망이다.
■규격 확정 어려운 사업, 성과목표 중심 계약
성과목표형 경쟁적 대화에 의한 계약은 기술적 요구사항이나 계약 목적물의 세부 내용을 미리 정하기 어렵거나, 다양한 대안 가운데 최적의 해법을 선정해야 하는 사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상용화된 물품이나 용역만으로 계약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거나 사업의 복잡성과 난도가 높은 경우도 대상에 포함된다.
발주기관은 입찰대상자들과 계약 목적물의 세부 내용 등에 대해 경쟁적·기술적 대화를 진행한 뒤 성과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계약 이행 과정에서도 성과목표 달성에 필요한 범위에서 요구성능과 과업내용,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계약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성과 달성도에 연동해 대가를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기술적 난도가 높고 현장 여건에 따라 최적의 구현 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 사업에서 발주기관이 세부 규격을 사전에 고정하는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다. 정보통신공사에서도 기술 요구사항을 구체화하기 어려운 신기술 적용 사업의 계약 방식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개정안은 계약상대자가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음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기술적 한계 등으로 성과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를 ‘성실실패’로 규정했다. 이때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한 대가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혁신계약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계약보증금 국고 귀속, 지체상금 부과, 입찰참가자격 제한, 성과목표 미달을 이유로 한 계약 해제·해지 등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계약을 성실히 수행한 공무원과 관련 심의·자문 참여자에 대해서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징계나 변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조달 샌드박스’ 도입…새로운 계약방식 시험
시범특례에 의한 계약은 기존 국가계약법의 계약 체결·이행 방식으로는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혁신적·특수한 사업에 새로운 계약방식을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제도다.
각 중앙관서의 장은 시범특례 적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특례 설정을 요청할 수 있다. 재정경제부 장관은 조달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계약 체결과 이행에 관한 한시적 기준·절차를 정할 수 있다.
특례 유효기간은 최대 2년 범위에서 정하고, 필요할 경우 2년 범위에서 한 차례 이상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 특성에 맞는 계약방식을 시험할 수 있도록 이른바 ‘조달 샌드박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개정안은 이와 함께 성과목표형 계약을 국가계약법상 계약보증금, 지체상금,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 관련 규정의 적용을 완화할 수 있는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정태호 의원은 “첨단기술의 발전 주기가 빠르게 단축되는 상황에서 정형화된 현행 계약제도만으로는 시장에 없는 혁신기술을 공공부문에 신속히 도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공공부문이 혁신기술의 첫 구매자가 돼 초기 시장을 만들고, 연구개발과 구매의 단절을 해소할 수 있도록 국가계약제도를 혁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개발과 구매를 연계하고 성과 중심의 유연한 계약방식과 조달 샌드박스를 도입해 혁신기술이 공공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다만 현재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단계로, 실제 제도 도입 여부와 세부 운영 기준은 국회 심사 및 후속 입법 과정을 거쳐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