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정책 동향

  • 건설산업 BIM 의무화 한계…실제 활용에 무게중심 둬야
[자료=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정부가 건설산업 디지털 전환의 일환으로 건설정보모델링(BIM)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단순히 의무화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는 정책의 한계가 분명하며 앞으로는 ‘데이터가 흐르는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은 시설물의 생애주기 동안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3차원 모델 기반으로 통합해 건설 정보와 절차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상호 연계하고 디지털 협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정부는 지난 2020년 ‘2030 BIM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공공공사를 대상으로 단계적인 BIM 의무화를 추진해 왔다. 올해부터 5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BIM 적용을 의무화했으며 향후 300억원 이상 사업을 거쳐 2030년에는 모든 공공공사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이처럼 공공공사를 중심으로 BIM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지만 설계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시공 단계의 공정관리와 공사비 산정, 유지관리로 연결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에 상당수의 BIM 모델이 납품 이후 활용되지 않는 ‘일회성 산출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BIM 활성화의 걸림돌은 부족한 기술이 아니라 제도와 산업 구조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이 내놓은 연구 결과는 BIM 정책의 핵심 문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건산연 분석 결과, BIM 활성화를 가로막는 주된 요인은 경제적 유인(50.5%)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부 항목 가운데 투자 대비 효과(ROI)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분석됐다.

이는 설계자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고품질 BIM 데이터를 만들어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구조 때문이다. 반대로 발주기관과 시공사는 BIM 데이터의 혜택을 얻지만 데이터 생산 비용은 대부분 설계사에 집중된다. 결국 데이터를 만드는 사람과 데이터를 활용하는 사람이 서로 다르다 보니 BIM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한 동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현장의 문제는 불합리한 행정시스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공공공사의 기성검사와 내역서 작성, 준공도서 제출은 여전히 2D 도면 중심으로 운영된다. BIM 모델을 작성하더라도 별도로 기존 방식의 도면과 내역서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이중 작업이 반복된다.

철도 분야를 예로 들면 BIM 객체를 활용한 공정관리는 가능하지만 공사비 산정 체계가 기존 내역 중심으로 운영돼 BIM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역시 설계에 BIM 모델을 반영하고 있지만 시공 단계에서 다시 작성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발주기관마다 BIM 기준과 객체 분류체계가 달라 동일한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BIM 도입 비용도 큰 부담이다. 산업계에 대한 조사에서는 전문인력 부족과 높은 초기 투자비가 BIM 도입의 애로사항으로 지적됐다. 특히 중소 규모 설계사무소의 경우 힘겹게 양성한 BIM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 투자비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프트웨어 가격과 교육비, 객체 라이브러리 구축 비용도 큰 부담이다. 여기에 국내 표준 라이브러리와 공통 데이터 환경이 충분히 조성되지 않아 기업마다 별도의 데이터를 구축해야 하는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제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BIM 도입의 양보다 실제 활용도를 평가하는 핵심성과지표(KPI)를 마련하고, 데이터 품질과 활용 수준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데 다수 전문가의 견해가 일치한다.

아울러 설계자가 만든 BIM 데이터를 시공사와 발주기관이 활용해 얻는 편익을 공유하는 계약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나아가 설계에서 만들어진 정보를 시공과 유지관리까지 끊김 없이 연결하고, 참여자 모두가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건산연은 “정부와 산업계가 단기적으로 BIM 적용률을 높이는 데 머무르지 않고, 데이터가 흐르는 산업 구조 조성이라는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건설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규 기자 fatah@

×